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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 닼세상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바라 본 세상’입니다. 매주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고, 그 속에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달하거나, 미학적 측면의 분석글도 아닙니다. 그저 다큐멘터리가 좋아서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고, 많은 분들과 다큐멘터리의 매력을 나누고자 합니다.

처음으로 소개하려는 다큐멘터리는 ’마지막 수업’(Être et Avoir,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아닙니다. )입니다. 프랑스 중부 Saint-Étienne-sur-Usson(쌍 에띠엔느 씨흐 위쏭)이라는 작은 시골마을 학교가 배경입니다. 전교생은 13명 남짓. 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한 반에 모여 공부 하면서 벌어지는 소박한 일상의 이야깁니다. 정년을 1여년 남긴 로페즈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눈밭에서 한 무리의 소떼를 모는 줄리앙네 가족이 분주한 아침을 맞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학교로 모여 듭니다. 유치원생의 오늘 수업은 maman(엄마) 글자 배우깁니다. 로페즈 선생님이 써 준 글씨를 따라 적어 보지만,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습니다. 친구들이 열심히 글씨연습을 하는 동안 조조가 불쑥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 지금이 아침이에요? 오후에요?” 로페즈 선생님은 대답 대신 되묻습니다. “지금이 아침이니, 오후니?” 해맑은 조조는 “오후요!”라고 짧게 대답합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오후가 되기 전에 뭘하지?” “점심 먹어요!” “우리가 점심 먹었니?” “아뇨” “그러면 지금이 아침일까? 오훌까?” 그제서야 조조는 지금이 아침인 것을 알아차립니다.

줄리앙과 올리비예가 속한 고학년 반 아이들은 공포의 딕떼(받아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문장을 부르면, 아이들은 받아 적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했던 그것과 다를 게 없는데요, 발음은 같은 단어지만, 문장 부호 하나 차이로 시제와 품사가 달라지고, 때로는 전체 문장에서 그 단어를 유추해 내야하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시험입니다. 프랑스어는 언어 자체의 지위가 헌법과 법률로 규정되어 있을 만큼, 프랑스 사람들의 언어사랑은 대단합니다. 어휘력뿐만 아니라, 문법, 발음 등 프랑스어의 모든 영역의 지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고등학교 학생들도 받아쓰기를 한다고 합니다.

이제 곧 중학교에 올라가는 줄리앙은 학교에서는 말썽꾸러기지만, 집에서는 트렉터도 몰고, 소똥도 치우는 등 한 몫의 일꾼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런 그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숙제. 오늘은 엄마가 옆에서 도와줍니다. 오늘 숙제는 구구단이네요. 3 곱하기 6은 12. 순간 엄마가 줄리앙의 뺨을 가차 없이 때립니다. 철썩. 5 곱하기 6은 25. 엄마는 구구단 5단을 외우라고 시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삼촌이 한마디 거듭니다. “곱하기는 자릿수를 잘 맞춰서 해야 해”어느새 온가족이 줄리앙 숙제에 매달리게 됐습니다. 2곱하기 6은…머뭇거리는 줄리앙에게 아버지가 한마디 던집니다. “두 번씩 여섯 번 뺨을 때리면 모두 몇 번이지?” 줄리앙은 숙제를 끝낼 수 있을까요?

로페즈 선생님 수업에서는 교과서가 따로 없습니다. 선생님이 직접 만든 교재를 사용하거나, 아이들과 같이 교재를 만들어가면서 공부하는, 체험학습 위주로 교과가 구성됩니다. 프랑스 정부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 자율선택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수업교재 선택, 학생들 진급 여부 등 모든 것이 담임선생님의 재량사항입니다. 유치원 교사부터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원의 지위가 동등한 프랑스 선생님들은 그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프랑스가 지금의 교육체계를 갖춘 것은 1968년 이른바 68혁명 이후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파리 1대학 2대학 등의 대학 서열폐지도 68혁명의 산물입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사랑스러운(?) 딕떼시간. 문장을 불러주려던 로페즈 선생님은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처음 딕떼를 불렀던 것이 35년 전이구나” ”내가 몇 번이나 받아쓰기를 불러 줬을까?” 아이들은 저마다 백번, 천 번이라고 대답합니다. “몇 번을 했는지 셀수 없구나. 양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란다.” ”이제 이 받아쓰기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내년이면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지.”의아해 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정년퇴직을 알립니다.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하나의 약속을 합니다. “방과후에나 주말에 너희들이 찾아오면, 숙제도 봐주고, 학교생활도 이야기 할 수 있을 거야.”

로페즈 선생님의 아버지는 스페인에서 건너 온 이주노동자였습니다. 우리네 아버지가 그렇듯 당신의 자식은 힘든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하루 내내 선생님 흉내내기를 좋아했던 그는 가르치는 일에 늘 즐거움을 느끼면서, 교사가 천직이라고 생각했답니다. 가르치는 일에 애정을 갖는 것은 비록 시간이 걸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에 어려움이 있지만, 늘 아이들이 그만큼의 보답을 해 주기 때문에 보람이 있다고 합니다.

때로는 아이들간의 싸움을 말려야 하고, 조조가 고장 낸 복사기를 고치는 일도 해야 하지만, 로페즈 선생님이 최고로 잘 하는 일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곧 중학교에 진학해야 하는 줄리앙과 올리비예에 대해서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하고, 가족문제도 함께 고민해 줍니다. 정신장애가 있는 나탈리에게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토요일마다 나를 찾아와서 중학교 생활을 이야기 해 주렴. 매주 토요일 너를 기다릴 거야”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이제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합니다. 아이들과 서로 뺨을 부비며 ‘Au revoir monsieur’(오 흐부와,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서로 인사를 합니다. 때로는 한 번. 두번, 세번. 교실을 나가는 아이들을 보며 로페즈 선생님은 눈물을 짓습니다. 그렇게 로페즈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끝났습니다.

프랑스 교육은 엘리트 중심 교육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 한 교실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엘리트 교육 중심에 Grandes écoles(그랑제꼴)이 있습니다. 대학위의 대학이라고 할 정도로 높은 교육수준과 졸업 후의 진로도 보장됩니다. 정치, 행정, 경영, 공학 등 각 분야 전문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 지도자로서 다른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하고, 그동안 사회에서 입은 혜택을 사회에 되돌려 주기위해 노력을 한다고 하네요. 굳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낸다고 합니다.

여객선 침몰 사건으로 모든 국민이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무언가 결단을 내려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우리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보여 줬으면 합니다. 하루 빨리 좋은 조식이 들렸으면 합니다.

Posted by cyber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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